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타니 코키 (문단 편집) == 여담 == * 또 다른 업계의 중진들인 [[쿠도 칸쿠로]], [[후쿠다 유이치]]와 친한 사이다. 셋 다 연극인 출신으로 드라마, 영화 모두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다. 경력은 미타니가 이들보다 훨씬 긴 선배다. 쿠도 칸쿠로의 대하 드라마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에도 [[카메오]]로 우정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다텐에 대한 칼럼도 썼다.[[https://mobile.twitter.com/action1207kamen/status/1103563516496162816|#]] 후쿠다 감독은 우스갯소리로 쿠도칸과 미타니가 좋은 작품을 만들때 열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천재성을 발휘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본인은 알기 쉬운 누가 봐도 아 웃으면 되는구나 하는 영화 찍는데 저 둘은 고급스러운 유머를 구사한다고 짜증을 내며 농담한 적이 있다. * 미타니는 [[아사히신문]] 주간 칼럼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글쓰기 과정, 함께 작업한 배우들에 대해 자주 논한다. * [[1990년대]]부터 드라마 업계의 탑급으로 올라 비슷한 연배에 [[노지마 신지]]와 자주 비교됐다. 노지마 신지는 1990년대에는 미타니와는 비교가 안 될정도로 그야말로 시대를 평정한 각본가였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돌연 갑자기 추락해버렸다. 노지마의 하락세 이후로는 미타니가 드라마, 영화 할 거 없이 흥행을 기록했으며 30년 가까이 업계 최정상에서 롱런중이기에 노지마와의 격차는 더 벌어져 위상이 역전된 상태다. * 상당히 엉뚱한 인물로 유명하며 일명 '[[괴짜]]'라고 불린다. 국내의 인터뷰중에 본인의 성격을 ‘지금은 인터뷰니까 대답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지만 평소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바 있다. 인터뷰어가 한국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받은 것이 없냐고 하자 오래 머물지 않아 아이디어로 삼을 만한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비비빅(아이스크림)|비비빅]] 아이스크림 빈 봉지와 소시지 비닐을 꺼내놓았다. 인터뷰 시간보다 먼저 도착한 그는 편의점에 들렀는데 다들 비비빅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고 한다. 너무 달아서 먹을 수가 없어 다시 들어가 소시지를 샀다고 한다. 그런데 소시지는 너무 맛이 없어 다시 비비빅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이것이 꼭 코미디의 한 장면 같지 않냐며 웃었다고 한다.[[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508|#]] *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감독 우에다 신이치로가 좋아하는 일본 감독이다.[[http://m.cine21.com/news/view/?mag_id=93928|#]] 실제로 일본에서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미타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한 사람들도 있다.[[https://note.com/y0he1_yamash/n/neb134e4162d4|#]] 우에다 감독은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자신이 영향을 받은 영화라고 설명했다.[[http://pikko.hatenablog.com/entry/2018/09/26/213819|#]] * 대하 드라마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의 시청률이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자 주연 나카무라 칸쿠로에게 "숫자(시청률)는 절대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좋아"라고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https://www.asahi.com/sp/articles/ASM34569ZM34UCVL01Z.html|#]] * 데뷔부터 지금까지 [[후지 테레비]]에서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1990년대에는 후지 테레비 전담 작가라 불릴 정도로 후지 테레비 소속 작가라고 불렸다. 이후 대하 드라마나 wowow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현재에도 후지 테레비에서 스페셜 드라마를 쓰고 있으며, 미타니의 영화는 모두 후지 테레비에서 제작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후지에서 재방송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1년 1월에는 [[기억에 없습니다!]]가 후지 테레비에서 재방송되어 시청률 12%를 기록했다. * 업계에서는 [[천재]], [[거장]], 스승으로 불리는 인물이지만, 미디어 출연이 제법 잦아서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은편이다. 기본적으로 입담도 좋아 [[예능 프로그램]]에 단골로 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 홍보에는 자신이 앞장서서 예능 프로그램 등에도 자주 출연한다. 어디까지나 시작자인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을 싫어하지만, 메인 게스트로서 불렸을 경우에는 여러가지 [[기행]]을 저지르는 일도 종종 있다. 남을 웃기는걸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본인을 우스꽝스럽게 변장해 남을 웃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밑에 있는 [[오구리 슌]]과의 이상한 인터뷰가 그러하다. [[오오이즈미 요]]는 "본인의 [[우상]][* 대학 시절부터 미타니의 팬이었다고 한다. 미타니와 같이 작업하면서 미타니가 보낸 칭찬 메일은 보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같은 분이라 제발 이런 짓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예능 프로에서 말하기도 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GQI8-UOEKUc)]}}}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0gX7cTkQeI8)]}}}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6CiAiid3GXk)]}}} || || '''예능 출연 모습''' || * 그 [[기행]]의 대표적인 예로 2013년 FNS 가요제에 등장해 [[AKB48]]과 함께 노래 [[Beginner]]의 라이브를 부르며 시청자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했던 사건도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BOOL7oB5qv8)]}}} || || '''문제의 그 라이브.''' || * [[나카모리 아키나]]의 광팬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후루하타 닌자부로 시리즈 1기 1화의 게스트 배우를 맡게 했다. >이 드라마 재미있냐고 묻자 카토리 씨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전 이런 건 솔직히 말하는 편인데 이번 드라마는 너무 재밌어요" 이런 한마디가 작가들의 의욕을 북돋아줍니다.[[https://twitter.com/mitanin_bot/status/1364938183633367044?s=19|#]] * [[카토리 싱고]]는 그의 [[페르소나]], [[뮤즈]]라고 불릴 정도로 미타니의 작품에 상당히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미타니는 카토리 싱고의 연기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미타니 본인도 카토리를 굉장히 아끼는듯 하다. 미타니는 카토리를 "희극 배우로서 저는 전폭적인 신뢰를두 고있다."라고 칭찬했다. 카토리도 "미타니 씨와 함께 할 때는 각본을 읽기 전부터 두근거리는 것부터 시작됩니다."라고 말했다.[[https://thetv.jp/news/detail/243737/|#]] 이렇게 돈독한 사이지만 카토리 싱고가 아직도 번호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카토리는 일본 연예계에서 번호 안주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 미타니는 대하드라마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일은 또 없다", "나의 일 중에서도 빅 프로젝트이고 각본가인 이상 모두 대하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https://realsound.jp/movie/2020/01/post-484075.html|#]] * 마감 임박까지 대본이 완성되지 않는 느린 집필로 유명하다. 한 일화로 대본의 지연으로 인해 공연 첫날이 연기되게 되어, 사사키 코지로역의 진나이 타카노리가 강판한 일화가 있다. 이 때에 미타니는 '향후, 이런 일을 키며 붓을 부러트리겠다'라고 말하며 [[절필]] 선언을 한 바 있다. 그래서 진나이 타카노리와 미타니 코키의 사이는 굉장히 좋지 않다. 배우들도 이런 부분에서 싫증을 내지만 막상 결과물을 너무 훌륭해 불평을 못한다고 한다. * 부정적인 역사 인물을 다룰 때에 대해서도 말했다. "「[[괴벨스]]는 저런 광기에 빠진 인간이지만, 유쾌한 부분도 있구나」라고 그리는 것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이런 유쾌한 인간이지만, 광기에 빠졌다니까」라는 식으로 그리는 방식이 아니면 안 됩니다."[[https://twitter.com/mitanin_bot/status/1364568225099304963?s=19|#]] * 30대 초반 연속 드라마 임금님의 식당을 쓸 무렵, 정말 못 써 내일 아침까지 못 쓰면 녹화가 안 되고 방송이 안 되는 데까지 절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룻밤 고민해도 쓸 수 없어 아침이 되었다고 하며 미타니는"어떻게 책임질까? 이건 이제 죽는 수밖에 없는 건가. 거기까지 내몰린 적이 있었어요."라고 말한바 있다. 거기서 우연히 켜놓은 TV로 영국 코미디 프로그램 [[미스터 빈]]을 하고 있었다.이렇게 우울한데 그때 웃고 말았으며 웃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긍정적인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참 운이 좋았죠. 그때 미스터 빈을 했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영화 같은 걸 하면 죽었겠죠. 희극은 사람을 격려하는 것, 기운을 북돋는 것이라고 다시 생각했고 이 세계로 나아가길 잘했다, 이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당시를 회상했다.[[https://www.sankei.com/smp/life/news/171102/lif1711020003-s1.html|#]] * [[영감]]은 어떻게 내려오냐는 질문에는 "즐겨 각본을 쓰는 것 같지만 짜내듯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고민하는 동안에는 생각이 안 나죠. 그럴 때는 [[샤워]]를 합니다. 맞은 뒤 몸을 닦다가 순간 머리가 공백이 될 때 아이디어가 들어옵니다. 막힐 때는 하루 5, 6회 샤워를 하다 보니 청결감이 넘칩니다."라고 답했다.[[https://www.sankei.com/smp/life/news/171102/lif1711020003-s1.html|#]] * 오와라이 콤비 [[톤네루즈]]의 키나시 노리타케와 어린 시절 축구 교실에 같이 다녔다고 한다. 10년 정도 같이 했다고. 키나시는 1군이었고 본인은 실력이 별로라 13군이었다고 한다. 미타니는 톤네루즈의 예능 프로그램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이었습니다'의 꽁트 각본을 담당하기도 했다. * 엄청난 [[워커홀릭]]에 [[다작]] 각본가로 유명하다. 그는 어떤 라이프 스타일이냐는 질문에 "일 이외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취미도 없어서 강아지랑 놀고있을 정도인가요? 여행도 가지 않고, 영화나 무대도 일 때문에 보게 되니까 순수하게 즐길 수 없어요. 지금까지는 휴식처로서 역사책이나 자료, 화보집등을 보았지만, 최근 그것도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쓴웃음). 하지만 일을 하면서, 숨을 빼고 있는 부분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숨이 막히는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https://www.vogue.co.jp/celebrity/interview/2013-11-kiyosukaigi|#]] * 연출도 한 지 20년 이상 되니까 배우를 대하는 방식의 노하우가 생겼다고 한다. "어떤 말을 해야 이 배우가 가장 이해할지 찾을 수 있게 됐어요.예를 들어 처음 함께 일하는 사람의 경우 어떤 말투를 써야 하는지, 세세하게 움직여야 하는지, 더 대충 말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는 겁니다. 그 사람의 본업이 뮤지션이라면 첫 대사 시작 음을 좀 더, 세 번 더 올려줄 수 있어요. 그 사람 그 사람에게 맞는 연출 방법, 말을 찾아내는 방법 같은 것도 수를 소화해내다 보면 점점 보이는 부분이 있네요."[[https://style.nikkei.com/article/DGXMZO49049920X20C19A8000000?channel=DF041220173308|#]] * 대학 시절에 무대 [[아마데우스]]를 보고 거기에 나오는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가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연극에서 살리에리는 "나는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그런 사람들의 수호신이 되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살리에리도 굉장한 작곡가이긴 하지만 당시의 미타니는 앞으로의 인생이 불안투성이로 자신의 재능에 의문을 갖고 있기도 해서, 살리에리의 말에 매우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 전국 시대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패배]]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타케다 카츠요리]]도 그에게는 영웅이고, [[이시다 미츠나리]]가 사나다마루에서 중반의 주역이 된 것도 필연이었다고 생각하고,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파멸을 정중하게 그린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한다. * [[삼국지]]의 인물중에서는 [[군사]]를 좋아해 [[제갈량]]이나 [[주유(삼국지)|주유]]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https://style.nikkei.com/article/DGXMZO49049930X20C19A8000000?channel=DF041220173308|#]] * 애착이 있는 작품으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꼽았다. "'이것은 해냈다'.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아직 없습니다.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는데요. 하지만 자신감을 키운 건 처음 감독한 영화 웰컴 투 맥도날드입니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작은 극장에서 상영하고 저는 제일 뒤에서 보고 있었는데 일본과 같은 공기 속, 일본과 같은 곳에서 관객이 웃고 있었죠. 상영 후 밝아져 자신을 소개하자 돌아본 손님은 모두 독일인, 베를린에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분위기 좋았어요. 웃음소리는 일본인이나 독일인이나 다르지 않다. 그 감동, 기쁨은 큰 것이었습니다."[[https://www.sankei.com/smp/life/news/171102/lif1711020003-s1.html|#]] * 연극인 출신이라 [[특수촬영]]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한 연출에는, 설령 그것이 효과적이라 해도,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고 밝혔고, 연출가와 의논한 적도 있다고 한다.[[https://twitter.com/mitanin_bot/status/1365300432722010112?s=19|#]] * 본인은 남 위에 서는 사람이 못된다고 한다. 곁에 있어 어드바이스를 하는, 객관적으로 여러가지 것을 보고, 적확한 어드바이스를 한다고 하는 포지션이 '제일 멋있다'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회장은 되지 않았지만 부회장은 됐다고. 학창시절에 극단을 만들었을 때 단장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고, 흐름에 따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몇 년인가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극단 좌장이 되고 싶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고 한다. 극단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극단원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연애관계가 꼬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인간 관계도 귀찮았다고 한다. "인간관계를 엮는 데는 좋지만 너와 네가 이 사람을 서로 빼앗고 있었는지, 나는 왜 안 들어갔어? 기분 나쁜 놈들이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어요."[[https://style.nikkei.com/article/DGXMZO49049930X20C19A8000000?channel=DF041220173308|#]] * 본인의 어린 시절 [[영웅]]으로 [[찰리 채플린]]을 꼽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어쩜 이리 훌륭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https://blog.daum.net/pinkfactory/16879933|#]] * 본인이 [[리더]]가 되는 것이 싫은 이유로 그의 아버지를 꼽았다. 미타니의 어린 시절에 돌아가셔서 그다지 인상은 없지만, 몇 안 되는 기억 중의 하나로, 항상 집에서 회사로 전화를 해서 부하를 꾸짖는 광경이 있었다고 한다. 그 목소리도 기억하지만 화를 많이 냈다고. "그것을 보고 있으면, 제 부친의 기억의 8할은 화난 모습이 되었습니다만, 무엇인가 그것이 몹시 어린 마음에게도 싫었습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왜 항상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아버지가 그것에 대해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운전 기사나 회사 사람은 저도 놀아 준 적이 있고, 그러한 친숙한 사람들이 혼나고 있는 것은 정말 싫었기 때문에 항의했습니다. 그때의 인상 때문인지 남 위에 선다는 것의 괴로움, 괴로움이 내 안에 인풋된 것이었구나 하는 건 느껴집니다."[[https://style.nikkei.com/article/DGXMZO49049920X20C19A8000000?channel=DF041220173308&page=3|#]] 미타니 본인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반면교사 삼아 남에게 화를 잘 내지 않는다고 한다. * [[개인주의]] 성향이라 사람들을 데리고 [[술]] 마시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본인은 [[개]]를 좋아해서 집단이 싫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극단끼리 신주쿠 등에 술 마시러 가는데, 첫 번째 집이 끝나고 2차 갈까 하고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이 정말 싫어서 잠깐 한 번 자취를 감췄다가 뒤늦게 다음 가게로 가곤 했습니다. 나란히 걷는 것도 싫었죠."[[https://style.nikkei.com/article/DGXMZO49049930X20C19A8000000?channel=DF041220173308|#]] 회식에 관해서도 감독이 오지 않으면 건배도 시작하지 않고, 테이블에 생선회 큰 접시가 나와 있어도 아무도 먹지 않는다는것도 싫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인물인듯 하다. * 책임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책임 없는 재미요? 왜 남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나 하는 마음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쓴 글을 본 사람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면 정말 그만해라고 생각해요. 임금님의 레스토랑이라는 TV 드라마 각본을 20년 이상 전에 했는데 우연히 들어온 가게 주인이나 요리사가 저걸 보고 '이 일에 들어왔습니다'라고 하면 정말 죄송하다며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만약 가게가 망하거나 할 때 그 작품 때문이야 하는 건 싫지 않아요? 극단 배우들이라 믿기도 하지만 저들이라 이분들의 인생을 내가 나중에 책임지고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정말 용서해주셨으면 했어요."[[https://style.nikkei.com/article/DGXMZO49049930X20C19A8000000?channel=DF041220173308|#]] * 2013년 기요스회의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는 "나는 기본은 영화팬이기 때문에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보고 싶은 장르를 만들어 올 수 있어서 행복하다, 영화팬의 극치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것은 많다. 뮤지컬도 SF[* 실제로 만들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도 해보고 싶고, 사극도 어딘지 모르게 노하우를 알게 되어 또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https://eiga.com/movie/77213/interview/|#]] * 기본적으로 인터넷은 안본다고 한다. 극단 시절부터 공연의 앙케이트는 읽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라도 나쁜 평가를 들으면 그것밖에 머리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SNS는 가급적 보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사나다마루 집필 당시 블로그 등에서 제대로 분석해서 적어 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그러한 것은 가끔 보고 힘을 얻었다고 한다. * 자신을 정의로운 인물이라고 평한다.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인터넷은 집필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고 창작력을 감퇴시킨다는 이유로 거의 보지 않는다고 밝힌바 있다. 까다로운 일면을 드러내는 예로, 좀처럼 다른 사람을 집에 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의 영화에도 출연한 개그맨 코코리코의 [[다나카 나오키]]에게 [[삼국지]] [[피규어]] 컬렉션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미타니의 집에 온 다나카를 현관 밖에서 응대해 안에는 초대하지 않은 일화가 있다.[[https://youtu.be/0gX7cTkQeI8|#]] * [[양복]]을 좋아해서 공식 석상에서 양복만 입고 나온다. 영화 촬영을 할때도 양복만 입는다고. [[기억에 없습니다!]] 촬영 당시 여름에 [[골프장]]에서 혼자서만 양복 차림이었다고 한다. * 국내에서도 그의 연극이 공연 된 바 있으며 [[후카츠 에리]]와 함께 [[내한]]도 했다.[[https://www.asiae.co.kr/article/2012041306405803274|#]] 대표적으로 '웃음의 대학', '오케피',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https://youtu.be/-T_cJo-_CZM|웰컴 미스터 맥도날드]]'가 그렇다. 오케피는 배우 [[황정민]]이 연출하기도 했다. 국내 연극판에서 인지도있고 유명한 연출가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066214|#]]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9tRz7q9j6KU)]}}} || * 가장 먼저 본 대하드라마는 '나라 훔친 이야기'이며 가장 빠진 대하 드라마는 황금의 나날로 꼽았다. 베스트 원은 본인이 각본을 맡은 [[신센구미!]]를 꼽았다.[[https://www2.nhk.or.jp/archives/search/special/detail/?d=selection004|#]] * 1995년 그가 각본을 맡은 드라마 '역시 고양이가 좋아'의 출연한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와 결혼했다. 업무상의 인연은 오로지 연출·극본가와 여배우로서이며, 배우로서의 공동 출연은 '열쇠사 3'에서 한 번뿐이었다. 이후 2011년 이혼했으며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2013년 7월 19세 연하의 전 여배우 yuma와 재혼했고, 2014년 6월에는 첫아이가 태어났다. 고양이 3마리, 개 2마리도 기르고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02-30.jpg|width=100%]]}}} || || '''전 부인 고바야시 사치코와의 결혼 시절''' || * 2013년 그가 연출한 연극 <오노레 나폴레옹>에서 [[야마모토 코지]]의 상대역인 [[아마미 유키]]가 심근경색으로 공연 기간 도중 하차하게 된다. [[미야자와 리에]]가 대역을 맡게 되는데 미야자와와 제일 얽힘이 많았던 야마모토는 3일 밤을 새며 그녀와 연습을 맞춰주고 무대에 올랐다. "미타니 상, 아무 걱정마세요. 저, 이런 일도 있을 거 같아서 알빈의 대사 전부 외워왔어요. 미야자와 상이 실전에서 막혀도 내가 완벽하게 커버해 보일 테니 괜찮아"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미타니는 이런 야마모토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 2012년 [[영화가 좋다]]에 출연해 [[배두나]]를 언급한 바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DGDBy-Jw4eg|#]]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GDBy-Jw4eg)]}}} || * 2019년 12월, [[츠마부키 사토시]]와 함께 [[삿포로(맥주)|삿포로]]의 CM을 찍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gN-Uk9C3Bg)]}}} || * 여자를 볼 때 어디를 제일 먼저 보냐는 질문에 "내 바지 자크가 잘 잠겨있는지."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국내의 그와 비슷한 포지션의 인물로 [[장진(영화 감독)|장진]]이 있다. 그러나 연극계 출신 감독, 각본가라는 포지션이 비슷하다는 거지 업계의 위상이나 작품의 특징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흥행 파워부터가 장진이랑은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미타니가 압도적이다. * 2019년 미타니가 감독한 영화 [[기억에 없습니다!]] 개봉 당시 [[아베 신조]]와 만나 대담하기도 했다.[[https://twitter.com/abeshinzo/status/1160499811994370049?lang=es|#]] 아베는 미타니의 영화는 비교적 보고 있다고 대담에서 이야기했고, '더 우쵸우텐 호텔', '기요스 회의', '멋진 악몽'을 봤다고 한다.[[https://www.toho.co.jp/movie/news/1908/01_kiokunashi-movie_ib.html|#]]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10219_225652.jpg|width=100%]]}}} || * [[이토이 시게사토]]의 언론 호보닛칸 이토이 신문의 출연해 이토이와도 대담했다. 그의 각본 철학을 엿볼 수 있을정도로 좋은 인터뷰였다.[[https://www.1101.com/mitani_koki/2008-06-06.html|1]], [[https://www.1101.com/wagaya/index.html|2]] * [[사카이 마사토]]는 미타니의 집 근방의 마사지샵에 다니고 있어서 사카이 마사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근처 [[찻집]]에서 선물을 건넸다고 한다. * 본업은 아니지만 배우일도 가끔씩 한다, 대하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연기했다. 그는 '공명의 갈림길'에서 그가 연기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나라 훔친 이야기'에서 요시아키를 연기한 이타미 쥬조의 서투른 성대모사라고 밝히기도 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공명의 갈림길.jpg|width=100%]]}}} || * 본인의 근원이 되는 작품으로 NHK의 1971년 시대극 '텐카코멘(天下御免)'을 꼽았다. 이 드라마는 당시 평균 시청률 30%를 넘은 인기작으로 미타니는 언젠가는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https://www2.nhk.or.jp/archives/search/special/detail/?d=selection004|#]] * [[우라사와 나오키]]와도 친해 대담을 한 적이 있다.[[https://www.iza.ne.jp/kiji/entertainments/news/140104/ent14010411190006-n1.html|#]] 둘다 도쿄 태생에, 동세대로 우라사와가 2학년 위의 선배다. 미타니는 우라사와를 존경한다고 대담에서 밝혔다. [[20세기 소년]]을 인상깊게 읽었다고 한다. 우라사와도 미타니의 [[기요스 회의(영화)|기요스 회의]]를 인상깊게 봤다고 말했으며 미타니를 [[평화주의자]]라고 평했다. * [[시청률]]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말하면, 별로 나는 숫자에 구애받지 않는다. 재밌는 걸 만드는 게 저희의 사명이기 때문에 단지, 아무리 우리들이 힘써 만들어도, 만약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http://www.billboard-japan.com/d_news/detail/83752/2|#]] * 2021년 일본인 5,000명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미타니 코키 작품 순위에서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1,065표를 얻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https://rankingoo.net/articles/movie/00599a/4|#]] 2위는 임금님의 레스토랑(252표). *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대하드라마로는 황금의 나날(1978년)과 사자의 시대(1980년)를 꼽았다. 지금도 각본이 막히면 다시 본다고.[[https://bunshun.jp/articles/-/51815|#]] * 2022년 [[NHK 대하드라마]] [[가마쿠라도노의 13인]] 대본 집필이 확정되었을 당시 원래 미타니는 기존의 대하드라마와 색다르게 [[나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쓰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NHK]] 간부들에게까지 사정을 해보았으나 [[NHK]] 측으로부터 “[[센고쿠시대]]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만들면 기존의 만들어놓은 소품들을 재활용할 수 있지만, 희소한 [[나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만들면 처음부터 소품과 의상을 새로 만들어야하는데 우리 방송국은 그만큼의 돈이 없다”라는 답변을 받으며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c3f31892b3162e3754fe72a49a46fcfc263f2c8d|#]] ~~그 옛날에 극강의 고증을 선보였던 <쇼토쿠태자>를 방영한 방송국이 맞는지 싶을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